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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감상들/도서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책 읽어주는 남자 표지

★★★★★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인터넷 어디선가 누군가의 책 추천 목록에 이 책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도서소장목록 엑셀파일 구석에 메모를 해뒀더랬다.

 

리디북스 자동충전 쿠폰이 들어왔기에 뭘 살까 고민하다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이 책을 구매했다.

이 책에 대한 설명보다 리뷰를 먼저 봤었는데, 이 책이 영화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의 원작이라고 했다.

자신은 영화를 봤기에 책의 내용을 알고 봤지만서도 다시금 강렬한 인상을 받았단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봤다면 좋았을 거란 후회를 하며, 아직 안읽은 사람에게 아무것도 모르고 보길 권했다.

 

그래서 난 아무것도 안봤다.

책의 상세페이지도, 원작 영화 내용도 아무것도 안보고 모르는 채로 읽었다.

다만 네이버 영화에서 이 영화의 관람객 점수가 9점이 넘는다는 것만 알았다. 그래서 많은 기대를 했다.

 

이 책은 15세의 소년 미하엘이 우연히 36세의 한나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비밀스러운 연애로 발전하는 이야기로 진행된다.

15세 소년과 36세 여인의 잠자리 내용이 나오자 이게 뭔가 싶었다. 내가 읽으려고 기대한 책이 이런 내용이었나하고 실망했다. 

아무것도 모른채 읽었으니, 이 둘의 비밀스러운 연애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읽는 내내 감탄하며 곳곳에 하이라이트를 남겼다.

많은 소설을 읽은 건 아니지만, 주변의 풍경이나 사람의 감정을 이렇게 디테일하고 잘 와닿게 글로 표현해낸다는 점이 놀라웠다.

풍경과 장소는 너무 생생해서 마치 실제하는 곳인 것만 같았고, 작가가 표현한 소년의 감정은 내가 꼭 아는 그 감정이었다.

 

책은 2부에서 홀로코스트를 다루며 무거워진다.

어느날 갑자기 한나는 사라졌고, 세월이 흘러 소년 미하엘이 법학을 전공할때 나치전범을 재판하는 법정에서 한나를 만나게 된다.

한나는 나치전범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어린 시절 사랑했던 한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하엘의 감정과 그 당시 독일의 시대상과 세대간의 갈등, 우리나라의 친일청산이 절로 비교되는 나치전범을 철저히 처벌하려는 독일사회의 모습, 그리고 놀라움을 안겨줬던 한나의 비밀...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이 고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책을 읽다가 멈추고 미하엘의 감정에 귀기울이기도, 한나의 "당신이라면?"이라는 질문에 답해보기도, 한나의 비밀의 무게를 내 기준으로 가늠해보기도, 내가 미하엘이라면 판사에게 말해야했을까하는 철학적인 고민까지 들었다. 

 

3부로 들어서면 이 책의 제목이 <책 읽어주는 남자>인 이유를 알게 된다.

한나의 재판과정을 멀리서 말없이 다 지켜본 미하엘과 늘 그 자리에 미하엘이 있음을 알았던 한나.

한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벗어나지 못했던 미하엘은 한나에게 거리감을 두며, 교도소의 한나를 위해 인사를 담은 편지 대신 책을 읽어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준다.

일종의 의식이 된 이 행위는 한나가 사면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단 한번의 안부 인사도 하지 않은 채.

 

한나가 출소하기 일주일 전, 미하엘은 교도소장의 부탁을 받고 한나를 찾아간다.

15살 꼬마는 훌쩍 자라 한 아이의 아빠인 중년이 되어 있었고, 36세의 아름다웠던 여인은 머리가 하얗게 세고 무거운 몸으로 변해있었다.

미하엘이 그리워했던 여인의 체취와 감촉은 달라져있었고, 한나에 대한 미하엘의 감정 역시 사랑에서 연민과 원망, 일종의 책임감 쯤으로 달라져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만남은 가슴아프고 아름답지 못했다.

 

3부 10장의 첫번째 문장.

"다음 날 아침 한나는 죽었다."

 

한나가 출소하기 하루 전, 미하엘은 한나의 출소 준비를 마쳤고 그런 사실을 한나에게 전화로 알렸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한나는 자살을 했다.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났다.

한나의 유품에서 신문을 오려낸 고등학생 시절의 미하엘 사진이 나왔다. 한나는 미하엘을 한번도 가슴에서 지우지 않았다.

 

일주일 전의 만남에서 미하엘의 얼굴에서 한나가 찾는 것을 발견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그때 미하엘이 소년 시절, 자신에게 책을 읽게했던 행위에 대해 따지지 않았다면?

책을 읽어주는 의식이 시작되고 4년 만에 날아온 한나의 인사말에 답장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니, 꼭 미하엘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

교도소에서 매일 밤 자신을 찾아왔다던 불 탄 교회의 피해자들에 대한 죄책감이 더해지고, 18년만에 사회에 나오는 두려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애초에 한나가 유죄인 것은 맞았을까...?

 

책에는 한나가 왜 자살했는지 정확히 나오지 않았다.

다만 한나가 가지고 있는 미하엘의 사진과, 자신이 남긴 돈을 홀로코스트 피해자에게 전달해 달라고 한 유서에서 추측할 뿐이다.

 

 

 

 

괴물들은 커튼과 벽지의 문양들 속에서 흉측한 얼굴들을 내보이고, 의자들과 테이블들 그리고 서가들과 책장들은 우뚝 솟아올라 손을 뻗어 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우면서도 멀리 있는 산이나 건물 또는 배가 된다. 긴 밤 시간 내내 교회 탑시계의 종소리와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부르릉 소리와, 사방의 벽과 지붕을 더듬으며 반사되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환자와 동행한다. 이때는 잠이 오지 않는 시간이다. 그러나 불면증의 시간은 아니다. 즉 결핍의 시간이 아니라 충만의 시간이다.

 

해가 길어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황혼 속에서 그녀와 함께 침대에 머물고 싶어서 더 오랫동안 책을 읽었다. 그녀가 내 몸 위에서 잠이 들고, 마당의 톱질 소리도 잠들고, 지빠귀의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그리고 부엌에 있는 물건들의 색깔 중에서 약간 밝거나 약간 어두운 잿빛 색조만이 남게 될 때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나는 가끔 나의 감각에 자극을 주면서, 지금 기소된 내용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는 한나의 모습을 될 수 있는 대로 뚜렷이 떠올려보았고, 또한 그녀의 목덜미의 머리카락과 어깨의 배냇점이 나의 기억 속에 불러일으킨 행위를 하는 한나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그것은 마치 주사를 맞아 마비된 팔을 손으로 꼬집는 것과 같았다.

 

내가 그녀를 쫓아버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내가 그녀를 배반했다는 사실을 바꾸어놓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유죄였다. 그리고 범죄자를 배반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으므로 내가 유죄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범죄자를 사랑한 까닭에 유죄였다.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기대감을 보았으며, 나를 알아보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고, 내가 다가가자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두 눈을 보았고, 무언가를 찾고 묻는 두 눈에 불안과 아픔의 빛이 서리는 것을 보았으며, 그리고 그녀의 얼굴빛이 꺼지는 것을 보았다. 내가 그녀 옆으로 다가서자 그녀는 다정하면서 피곤에 젖은 미소를 지었다. "꼬마야, 너 무척 컸구나." 나는 그녀 옆에 앉았고,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나의 감탄과 기쁨은 한나가 글을 읽고 쓰기 위해 바쳐야 했던 그 엄청난 희생에 비해 얼마나 보잘것없었던가, 그녀가 글을 읽고 쓰게 된 것을 알고도 그녀에게 답장을 쓰거나 그녀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눌 생각조차 하지 않은 걸로 보아 나의 감탄과 기쁨이 얼마나 궁색했던가 하는 사실을 나는 느꼈다. 나는 한나에게, 내가 생각하기에 소중했던 벽감 하나를, 내게 무언가를 주었으며 나 또한 그것을 위해 무언가를 행한 조그만 벽감 하나를 내주었을 뿐 나의 인생의 어떤 자리도 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의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하여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 된다. 이전의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가거나 제쳐둔 것이 아니며 늘 현재적인 것으로서 생동감있게 다가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