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 저런 감상들/도서

앤서니 호로비츠의 추리소설『맥파이 살인 사건』

페이퍼 프로로 보는 맥파이 살인사건 표지
역시 침대에서 읽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훌륭한 탐정 소설을 최고로 친다.
거듭되는 반전과 단서, 속임수 그리고 막판에 이르러 모든 게 밝혀졌을 때
진작 알아차리지 못한 나를 발로 차주고 싶어 지는 동시에 느껴지는 충족감

책 속의 편집자 수전의 말이다.

나도 수전의 이런 말에 공감하고 싶은데 추리 소설을 즐기지 않아 잘 읽지 않다 보니 이런 감정을 느낄만한 책을 만나지 못했다.

 

『맥파이 살인사건』도 이런 감정을 안겨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추리소설을 즐기지 않는 나라는 사람 치고는 느슨해지지 않게 끝가지 잘 끌고 가서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은 것 같다.

 

이 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읽었기에 첫째, 이 책이 이렇게나 두꺼운 지 몰랐다.

다 읽고 나서 찾아보니 무려 32.3만 자더라.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34.8만 자다. 책 두께가 엇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둘째, 이 책이 액자식 구조인 걸 몰랐다. 그래서 책이 이렇게 두꺼웠구나.

시점이 '현재'에서 시작되어 '원고'속 이야기로 넘어가고, 원고 속 이야기가 끝난 다음 다시 '현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재' 시점의 살인사건과 '원고' 속의 살인사건, 살인 사건이 두 개니 단서를 찾는 것도 각각이라 두 개의 추리소설을 읽게 되는데 그만큼 단서를 캐치할게 많아지고 생각할 것도 많아져서 덕분에 두꺼운 책을 놓지 않고 끝까지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에 그 단서들을 조합해서 "범인은 바로 너!"라고 할 때 김 빠지는 건 역시 어쩔 수 없었지만.

 

 

 

※ 주의. 아래에는 스포가 있습니다.

 

 

 

 

 

 

 

책의 구성이나 추리보다 재밌었던 건, 추리작가 스스로 추리작가를 비하하는 것이었다.

 

책 속에서 『맥파이 살인사건』을 쓴 작가 앨런 콘웨이는 자신이 쓴 추리소설 '아티쿠스 퓐트 시리즈'로 백만장자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추리 소설을 자체를 혐오했다. 

 

원래 자신은 다른 문학 작품을 쓰고 싶었는데 그 작품들은 매번 출판사에서 거절됐고, 먼저 추리소설을 써보고 잘되면 다른 문학 작품을 써도 되지 않겠냐고 먼저 등단하는 게 중요하다는 아내의 조언에 따라 추리 소설을 썼는데 그게 대박이 나면서 추리 소설에 발목이 잡히고 만다.

 

아내의 말처럼 추리 소설로 대박이 났으니 다른 문학 작품도 발표하고 싶어서 출판사에 『미끄럼틀』의 원고를 넘겼지만 평가절하당하면서 앨런 콘웨이는 자신에게 조언을 했던 아내와도 이혼을 하고, 시한부를 선고받자 마지막으로 라디오에 나가 자신이 얼마나 추리 소설을 혐오하는지 자신의 생각을 낱낱이 밝히겠다고 하는 우기는 바람에 출판사 사장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추리 소설을 폄하하는 말은 다른 등장인물의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니까! 집사의 짓이라는 걸 밝히기 위해 8만 단어를 낭비하는 꼴이라니."

앤서니 호로비츠는 자신이 추리 작가임에도 책 속의 비중 있는 인물들을 추리 소설을 혐오하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앨런 콘웨이와 안드레아스는 추리 소설을 비하하는 말을 하고 주인공이자 책 속의 편집자인 수전은 그들의 말에 반박하며 추리 소설을 옹호한다.

 

수전의 말은 작가 앤서니 호로비츠가 장르 소설을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맥파이 살인사건』은 매력적인 액자식 구성을 가진 추리 소설일 뿐만 아니라, 소설 안에 장르 문학인 추리 소설 작가의 애환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두껍지만 추리 소설을 즐기지 않는 나조차도 끝가지 잘 끌고간 매력적인 책이니, 아직 읽지 않았다면 다가오는 추석 연휴에 함께하기에 좋을 책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