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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감상들/도서

올가 토카르축 『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들』 

 

 

2018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 올가 토카르추크의 『태고의 시간들』을 읽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다 내 취향에 맞을 리는 없기에 처음 출판됐을 때 미리보기로 살짝 들여다봤었는데 역시나 내 취향이 아닌 듯해서 패스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누군가의 강력한 추천을 받아 읽기로 하고 2019년 마지막 날에 리디북스에서 구매했다.

그리고 2020년 첫 책으로 선택하고 읽기 시작했다.

 

 

 

이 소설의 배경은 가상의 공간인 '태고'라고 불리는 마을을 중심으로 한다.

가상의 공간인 '태고'의 동서남북으로 마을의 경계를 각각 천사들이 지키고 있고 마을 사람들에겐 누구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는 수호천사를 가지고 있다.

 

첫문장 - 태고(太古)는 우주의 중심에 놓인 작은 마을이다.

그리고 이런 판타지스러운 설정에 실제 세계2차대전에서 폴란드가 겪었던 전쟁의 비참한 역사를 더해서 가상과 실제 역사가 뒤섞인다.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미하우 가족의 삼대와 그 주변 인물들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각 챕터는 'OO의 시간' 이라는 동일한 제목으로 84챕터가 이루어져 있는데, 매 챕터마다 다른 시각으로 그들의 삶을 보고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난 이렇게 챕터별로 캐릭터가 바뀌면서 서술되는 스타일을 좋아한다.

 

초반에는 캐릭터가 다양하다보니 챕터마다 다른 인물들이 계속 나오지만, 이 챕터들이 연결되고 이어져서 나중엔 어떤 캐릭터의 삶을 더 엿보고 싶어 따로 기다리는 캐릭터도 생기게 됐었다.


재밌는 건 'OO의 시간'에는 비단 사람들 뿐만 아니라 죽은 자, 게임, 신, 버섯균, 보리수, 과수원 같은 생물과 무생물이 주체가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미시아의 그라인더의 시간'이 좋았다.

 

어쩌면 커피 그라인더는 현실의 축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그라인더 주위에서 돌고 진보해나가는 현실의 축. 그라인더는 이 세계에서 인간보다 더 중요한 존재일 수도 있다. 나아가 미시아의 그라인더는 '태고'라고 불리는 것의 기둥일지도 모른다.

문장이 간결해서 읽기 쉽다. 그래서 쉽게 읽히는 책 같지만 뒤로 갈수록 내용이 철학적이고 상징적이며 꽤나 심오하다보니 해석이 안되는 내용들이 많았다. '게임의 시간'이라든가, '익사자 물까마귀의 시간' 등...

쉽게 읽히지만 결코 쉬운 책은 아니다.

 

그래서 다 읽고도 완독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고전처럼 곁에 두고 여러번 읽어야하는 책인듯 하다.

 

 

 

 

 

 

쌓이기만 하는 지식은 인간에게 아무런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거나 단지 변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저 겉옷을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며 배우는 사람은 끝없는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배워서 알게 된 것들이 존재 속으로 고스란히 스며들기 때문이다.
예슈코틀레 곳곳을 걸었다. 유대식 도살장과 고리에 걸린 신선하지 못한 고기, 셴베르트의 가게 아래 웅크리고 앉아 있는 얼어붙은 걸인, 아이의 관을 운반하는 작은 장례 행렬, 광장 옆 나지막한 집들 위를 낮게 유영하는 구름과 사방으로 내려앉아 모든 걸 지배하는 어스름을 보았다.
이렇게 병을 고친 모두가 전쟁에서 죽었다. 신은 바로 이렇게 현현하곤 한다.
게노베파가 두 눈을 감아보아도 그들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신 또한 그들을 응시하고 있다는 걸 게노베파는 알았다. 그리고 신의 얼굴을 보았다. 흉터가 가득한, 검고 끔찍한 얼굴이었다.
쿠르트의 병사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쿠르트는 그들을 만류하지 않았다. 총을 쏜 건 그들이 아니었다. 낯선 나라에서 느끼는 공포와 고향을 향한 향수가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그들은 총을 쏘았다.
쿠르트의 병사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쿠르트는 그들을 만류하지 않았다. 총을 쏜 건 그들이 아니었다. 낯선 나라에서 느끼는 공포와 고향을 향한 향수가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그들은 총을 쏘았다.
파베우는 자신이 길가의 한옆에 내던져진 돌멩이나 버려진 아이 같다고 느꼈다. 그는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이 거친 현재의 시간 속에서 바닥에 등을 대고 똑바로 누운 채 스스로가 매초 무(無)의 늪으로 가라앉고 있음을 생생히 감지했다.
3월에 토양이 따뜻해지면 과수원이 진동하기 시작하면서, 지하에 파묻힌, 집게처럼 생긴 발들이 대지의 살가죽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나무들은 마치 어린 강아지처럼 토양의 수분을 빨아 마시고, 그렇게 나무의 몸통은 점점 따뜻해진다.
세상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생을 찬미할수록, 생과 더욱 강렬하게 연결될수록 죽은 자들의 시간은 더욱 혼잡해졌고, 공동묘지는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죽은 자들은 이곳에 와서야 ‘삶이 끝난 후’에 대해 인식하게 되고, 자신들이 지금까지 주어진 시간을 허비했음을 깨닫게 된다. 죽고 난 뒤에 비로소 생의 비밀을 발견하게 되지만, 그 발견은 헛된 것이었다.
1년에 네 번씩 일어나는 사계절의 변화를 나무는 알지 못한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도, 계절이 순서대로 바뀐다는 것도 모른다. 나무에게는 네 가지 특성이 늘 한꺼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름의 일부는 겨울이고, 봄의 일부는 가을이다. 열기의 일부는 냉기이고, 탄생의 일부는 죽음이다. 불은 물의 일부이고, 흙은 공기의 일부다.
여기가 태고의 경계야.” 루타가 말하며 손을 앞으로 뻗었다. 이지도르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기에서 태고가 끝나. 더 가봐도 아무것도 없어.” ... 그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더니 루타가 경계라고 말한 그곳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멈춰 섰다. 왜 그런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뭔가 이상했다. 두 손을 앞으로 내밀자 손가락 끝이 사라졌다. ... “걱정 마, 이지도르. 우리에게 다른 세상은 필요 없잖아.
노년기가 되면 만물을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혜안이 트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저 뼈마디가 쑤시고, 잠을 이룰 수 없을 따름이었다. 죽은 사람도, 산 사람도, 그 누구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버스에 올라타니 승객은 아델카 혼자뿐이었다. 그녀는 가방을 열어 그라인더를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했다. 운전기사가 이상하다는 듯 백미러를 통해 아델카를 흘끔거렸다.

 

 

태고의 시간들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은, 혹은 기록될 수 없었던 소수자 개인들, 무엇보다 여성들의 이야기!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2018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대표작 『태고의 시간들』. 저자의 세 번째 장편소설로, 20세기 폴란드의 역사를 거대 서사의 축으로, 탄생부터 성장, 결혼, 출산, 노화, 죽음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인생 여정을 따라가면서 그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40대 이전의 작가들에게 수여하는 유서 깊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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