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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감상들/도서

신비한 이야기꾼, 쓰네카와 고타로의 『가을의 감옥』

가을의 감옥 표지
가을의 감옥 표지

 

『가을의 감옥』은 세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 단편, 『가을의 감옥』은 11월 7일이라는 하루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루가 지나면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와 똑같이 어제가 시작된다.
돌아오는 건 그저 하루 뿐이 아닌 자신의 위치, 쓰고 난 돈, 죽었지만 살아나는 목숨 등... 모든 것이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을 반복하는 자칭 '리플레이어'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오싹한 정체불명의 '기타카제 백작'이라는 존재가 있다.
기타카제 백작이 나타나는 주변은 빛과 소리가 줄어드는 기묘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리고 기타카제 백작을 만난 리플레이어들은 흰 빛에 휩싸이며 그대로 사라진다.

엔딩에서 주인공은 기타카제를 만난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기타카제 백작을 담담하게 맞이하고 하얀 빛에 휩싸이며 끝이 난다.

마지막까지 기타자케 백작을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대로 사라지는 건지, 다음날인 11월 8일로 나아가는 건지.

 

매일이 반복되지만 사람들은 과거를 바꿔서 11월 8일로 나가기 위해 몰두하거나 하지 않는다.
이 단편의 초점은 그저 매일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교류와 심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영화에서도 많이 보던 소재지만 뻔하지 않고 쓰네카와 고타로 답게 기묘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잘 풀어냈다.
짧고 가볍게 읽히지만 읽는 동안은 캐릭터의 불안감과 씁쓸함을 같이 느낄 수 있었다.

 

 

 



두번째 단편, 『신가 몰락』은 전국을 표류하는 집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정체불명의 초가집에 잠시 들렀다가 그대로 그 집에 갇히고 만다.
알고 보니 그 집은 때마다 다른 장소로 순간이동을 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는 신비한 집이었다.
그리고 항상 집을 지키는 사람이 한명 필요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탈출하려면 자신을 대신할 누군가가 집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야만 했다.

주인공은 집을 카페처럼 꾸미고 어느날 상쾌한 표정의 니라자키라는 남자를 맞이한다.
그리고 그대로 그 집을 탈출해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여기까진 그저 신비한 동화 같았는데 이 뒤부터 갑자기 장르가 호러로 바뀐다.

어느날부터 뉴스에 살인사건이 계속 보도되는데 주인공은 그 사건들이 그 집과 관련됐다는 것을 알아챈다.
전국을 옮겨다니는 집의 특징을 이용해서 그 상쾌한 표정의 니라자키라는 남자가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그 집이 나타나는 곳으로 찾아가 니라자키에게 그 집에서 나올 것을 권유한다.
주인공은 그 집을 살인이라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분노를 느끼는데, 그 집을 탈출하고 나서야 자신이 그 집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게된 것이었다. 

 

결국 어찌어찌해서 그 집은 불에 타다 제목처럼 몰락하게 되는데...

살인사건이 보도되는 장면에서 부터는 심장이 두근두근, 어떻게 이야기를 써내려갈지 설렐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쓰네카와 고타로는 '내가 기대한 것이 바로 이런 이거였어!'라는 느낌으로 책을 읽는 즐거움을 준다.



세번째 단편 『환상은 밤에 자란다』는 유독 기억이 잘 안나서 더듬어보니 읽으면서 좀 불편했던 것 같다.

주인공인 여자 '리오'는 다른 사람에게 환상을 현실로 보여주는 능력을 가졌는데 그 '신의 능력'을 숭배하는 단체에게 납치, 감금되어 돈을 받고 환상을 보여주도록 강요받고 있었다.

리오는 어린 시절 같은 '신의 능력'을 가졌던 할머니에게 납치됐던 일과 자신의 능력으로 벌어졌던 일들을 하나 둘 떠올린다.

납치 당한 곳에서 타인에게 환상을 보여주는 일을 하고 밤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몸을 내주며 리오는 마음 속으로부터 괴물을 키우고 있다. 그 괴물은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자랐고, 리오는 그 단체로부터 탈출하는 날 밤에 그 괴물을 자유롭게 풀어줄 것이다.

이 이야기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여자가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힌 자들에게서 벗어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역시나 결말은 보여주지 않고 열린채로 끝이 난다.

 

읽으면서 불편했던 이유가 납치, 감금, 살인 등이 그려져서인지 사람의 그릇된 욕망이 너무 있음직한 일이라서 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생각보다 단편들이 짧게 느껴져서 아쉬웠지만 쓰네카와 고타로의 환상적인 이야기는 늘 실망시키지 않는다.

맛있는 걸 미뤄두는 스타일이라 아껴뒀던 '천둥의 계절'을 읽을 때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