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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감상들/도서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숨결이 바람 될 때 표지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이 책을 읽을 당시의 나는 마음이 피폐 그 자체였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 우울증이 걱정됐고 삶의 의욕마저 사라진 상태였다.

상담을 받아볼까 했지만 의사 앞에서도 마음의 빗장을 열고 싶진 않았기에 나날이 속이 문드러져 가는 기분이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눈을 돌린 곳이 '책'.

마침 예전에 알라딘에서 10년대여를 해뒀던 <숨결이 바람 될 때>란 책이 떠올랐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이 어제 죽은 이에게는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라 하지 않았던가.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며 책을 읽었다.

 

 

결론은... 실패했다 ^^;

 

책을 2부로 나누자면 1부는 저자가 영문학을 전공하고도 의사란 직업을 갖게 되기까지의 성장 과정이, 2부는 그가 의사로서 성공하는 과정과 투병기가 그려진다.

의사집안에서 태어나 성공한 레지던트의 삶, 뭐든지 해주겠다며 교수로 와달라 줄을 선 명문대들, 아내 역시 의사이고, 갓 태어난 사랑스러운 딸 아이까지 있는 저자.

이런 완벽한 삶에서 떠나야 했으니 삶에 대한 애착과 미련이 책에 줄줄 흘러 넘칠거라 예상했건만 완전히 틀렸었다.

 

작가는 시한부의 삶을 덤덤히 받아들이며 하루하루를 '삶'으로 채워나갔다. 연민보다는 존경심이 느껴졌달까.

내가 찾았던 것은 '삶의 소중함' 이었는데 정작 찾은 건 '존경스러운 시한부의 삶'과 '이상적인 죽음을 준비하는 법'이었다.

저자가 집필을 완성하지 못하고 고인이 되어버렸기에 뒷 부분은 그의 아내가 마무리하는데, 난 아내의 글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책은 읽을 때의 환경에 따라 감동이 다르겠지만 당시의 내 감상을 떠올려보면 다시 읽고 싶진 않다.

그래서 별 세개.

 

 

그리고 좋았던 구절들.

 

죽음 속에서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 하는 자는

그것이 한때 숨결이었던 바람이란 걸 알게 된다.

새로운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고,

오래된 이름은 이미 사라졌다.

세월은 육신을 쓰러뜨리지만, 영혼은 죽지 않는다.

독자여! 생전에 서둘러

영원으로 발길을 들여 놓으라.

 

브루크 풀크 그레빌 남작, <카엘리카 소네트 83번>

You that seek what life in in death,

Now find it air that once was breath.

New names unknown, old names gone:

Till time end bodies, but souls none.

Reader! then make time, while you be,

But steps to your eternity. 

 

우리는 엄청난 투쟁과 고통을 딛고 이 세상에 오지만, 세상을 떠나는 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의사의 종교(Religio Medici)>

 

우리는 어느 날 태어났고, 어느 날 죽을 거요. 같은 날, 같은 순간에.

여자들은 무덤에 걸터앉아 아기를 낳고, 빛은 잠깐 반짝이고, 그러고 나면 다시 밤이 오지.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중에서

 

I can't go on. I'll go on.

 

사뮈엘 베케트의 소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 중에서